생존 학생을 위한 공간 ‘쉼표’의 라은영 활동가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77]

생존 학생을 위한 공간 ‘쉼표’의 라은영 활동가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77]

ai주식/주식ai : 문화예술 단체에서 예술교육과 문화예술 기획자로 일하던 라은영씨(56)는 세월호 생존 학생의 아버지로부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그런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주위의 많은 도움을 받아 생존 학생들을 위한 공간 ‘쉼표’가 만들어졌다. 9년째 쉼표를 운영해오고 있다.

investing : “세월호 참사 이후에 모든 업무가 중단됐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집회, 분향소, 단원고만 오가다가 2014년 겨울쯤에 ‘문화예술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하게 되었어요. 오랜 지인 중에 생존 학생의 부모가 있었어요. 그분에게 생존 학생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학교에 가면 상담 프로그램만 하니까 너무 지쳐 있다고 했어요. 그냥 재밌게 놀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피해를 본 아이들, 직접 피해자는 아니어도 유가족, 형제자매, 친구 등 회복의 과정과 단계가 제각각인 사람들을 모아놓고 같은 프로그램으로 회복을 돕다 보니 입장의 충돌이 생겼던 거죠.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기 힘든 상황이 되니까 생존 학생들이 숨어버리더라고요. 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많은 분들이 공감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2015년 광주시민상주의 1일 밥집 후원금과 안산 희망재단의 후원금, 그리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2015년 11월에 정식으로 개관하게 되었어요. 평소 알고 지내던 생존 학생들과 함께 공간의 구성과 이름을 논의했는데, 한 친구가 ‘쉼표’라는 이름을 제안했어요. ‘힘들 때 쉬어가도 좋아, 그래서 쉼표.’ 쉼표라는 이름이 이렇게 만들어졌어요.

세월호를 겪으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바뀐 듯해요. 피해 당사자와 가까이서 활동하다 보니 그들이 가진 불안감과 답답함, 그들이 겪은 불합리함 같은 게 저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느낌이었어요. 그전에는 사실 막연하게 활동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세월호를 통해서 내가 바뀌지 않으면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사회가 큰 사고를 겪고 교훈을 얻어왔지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대에서 이런 불합리함을 끊어내야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물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특별법이 강력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참사들은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진실규명이 명확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났으니까 덮고 가는 게 아니라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질 것을 책임지고, 한을 풀 것은 풀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그래야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제 목표는 최선을 다해 ‘쉼표’를 지켜가는 거예요. 이 공간에서 우리 아이들이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여기서 뭘 하고 싶다고 하면 이곳을 내어주고, 우리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는 게 바람이에요. 그리고 생존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꼭 남기고 싶어요. ‘세월호 10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너희들이 성장하는 모습은 보여. 너희들이 이 공간에 오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가고, 그후에 너희들이 보여준 애착과 신뢰가 정말 고마웠어. 너희들은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피해자야. 언젠가는 너희들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때까지 선생님들은 너희들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기다리고 있을게’.”

기자명조남진 기자다른기사 보기 [email protected]#세월호#세월호 10주기#세월호 10년 100개의 기억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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